몇년전 디스코엘리시움이라는 알피지 게임이 고티감이란 소문이 돌았다. 게임은 어마어마한 대사량을 소화해야 하는 꽤나 글의 비중이 높은 게임이었다. 평소에 글을 자주 챙겨보는 나로써도 맥 빠지는 배경음악을 병풍으로 읽어내려가야 하는 마이너한 문체의 대사들은 텐션을 자주 떨어뜨려 플레이를 자주 멈추게 했다.
이 게임을 제작한 자움 스튜디오는 발트연안인 에스토니아에 위치했다. 2차 대전동안 소련과 독일의 사이에서 양측의 점령하에 있던 경험을 가진 에스토니아는 중국과 일본사이에 시달렸던 우리도 쉽게 공감할만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90년대에 소련에서 독립했다.
전 세계를 뒤흔든 공산주의 가치를 선전했던 소련의 붕괴와 독립이후 새로 일궈나가야 할 자본주의 세상. 에스토니아가 겪은 이야기는 게임 내에서 가상의 대명사들로 치환되어 고스란히 그시대의 감성을 전해주고 있다. 게임의 시스템이나 선택에 따른 결과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게임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들여 표현된 허무주의는 김훈작가의 소설을 보는듯한 처연한 감성을 자극했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개성은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플레이 후 몇년이 흐른 얼마전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양복쟁이들이 디스코 엘리시움을 죽였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작한 기사는 핵심 개발자가 모두 떠난 자움 스튜디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투자자와 마찰을 빚어 분쟁이 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은 익숙한 클리셰처럼 보였다.
개성을 파괴하는 돈의 이야기는 비단 게임 뿐 아니라 경리단길, 무슨무슨 호들갑단길 들의 내리막으로 알게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개성강한 상권이 활기로 키워낸 생산성을 큰 자본이 들어와 그 열기를 꺼트리는 상황은 로마시대에도 기록이 있던 유서깊은 싸움이다.
둘사이의 공존은 어려울까? 개성과 자본은 태양과 달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고 뜨고 질 운명인가? 양복과 일렉기타는 함께할수 없을까? 그러나 개성도 공짜는 아니고 자본도 증식을위해 모험을 한다.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부분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스튜디오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관을 바탕으로한 차기작을 남겨두고 다른5개의 프로젝트를 접는다고 전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디스코 엘리시움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사람들이 차기작을 이어 받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수도 있겠다. 강렬했던 게임의 개성이 사라질까봐 우려하는것은 그 맛이 영원하길 바라는 게으른 감상자들 뿐이다. 비토 코를레오네가 죽으면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나온다. 어느것도 영원할수 없다. 빛나는 스타들이 요리한 만찬들을 식기전에 먹자. 그리고 응원하자.
기사의 끝에는 핵심 개발자였던 마틴루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없었다면 초기 투자를 받을수 없었을 것이다” 라며 씁쓸하게 회고하며 마무리 되었다. 문제의 투자자는 자신의 페라리를 팔아 초기 개발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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