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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 이야기와 게임에 대해 1부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


어떤 소재를 써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게임얘기좀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글이 재미가 없는지 생각보다 호응이 없다. 일이 바쁘다 보니 글을 읽을 여유가 없는 것일까? 하루종일 게임 개발하는데 게임에 대해선 더이상 생각조차 하기싫다 던가 그런 이유도 있을수 있겠다. 어쨌든 나에겐 게임은 아직도 참 신비로운 것으로써 할수록 궁금증도 많이 생기고 하고싶은 말도 생기게 되는지라 소주병에 편지를 한통넣고 바다로 떠내려보는 심정으로 답장을 기다린다. 오늘의 편지는 이야기 게임에 관한 내용이다.

이야기 게임은 추종자와 혐오자만 있는듯 하다. 컷신을 남발하는 게임들이 나오면서부터 좀더 두드러진 갈등같은데 개인적인 변곡점 은 2016년 이맘때쯤 발매한 레메디 스튜디오의 <퀀텀 브레이크> 가 출시하고 나서다.  <엘런웨이크>로 당시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 느낌의 세련된 스토리와 연출을 보여주던 레메디 스튜디오는  <퀀텀 브레이크>에서 본격적으로 게임이 아닌 드라마를 찍기 시작했다.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효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컷신에서 벗어나 게임의 장기로 여겨졌던 카체이싱 장면까지 컷신으로 만든것을 본 후 이 게임에서 손을 뗏다. 나에겐 내가 직접 움직이는 주인공에서 감상하는 주인공으로 충돌이 일어났던 것인데 축구하다 퇴장당해 벤츠에 앉은같은 매우 불편한 감각이였다.(난 축구를 하지 않기에 이 비유가 적절한지 확신은 없다.)  이때부터 게임과 이야기에 대한 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우리집은 명절때 동생과 하나의 게임을 완주하는 전통이 있었다. 혼자 하다가 잘 안풀리는 게임을 골라서 같이 하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 이었다. ‘로봇도 사람이다’ 라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해묵은 소재는 스토리 게임의 호불호를 떠나서 그 훤히 예상되는 결말때문에 끝을 못보고 있었다. (로봇의 시위장면에서는 경악했다, 로봇을 자동차 산업이 막을 내리던 디트로이드 노동자들로 치환해 생각한다 해도 감정 이입할 곳을 찾지 못했다. 유모차에 인형을 모시고 다니는 것처럼 아무거나 사람이라 생각할수는 없었다.) 나의 불호와는 달리 내 동생은 인생 최고의 게임이 되었다고 했다. 설날 내내 동생은 패드를 잡고 있었고 나는 쇼파에 누워 지켜보기만 했다.

어떤점이 동생에게 최고의 게임이 되게 했을까? 동생은 매 신작이 나올때 마다 플레이하는 헤비 유저는 아니다.  하지만 명작이라고 하는 게임들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조금씩 플레이 한다. (게임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주변에 동생만큼 게임 하는사람조차 없는것 같으니 헤비 유저라고 해야하나 싶다)  동생은 자신을 게이머라고 정의하지는 않으니 영화, 뮤지컬, 책, 전시,게임 등을 비슷한 비율로 소비하는 평범한 문화인이라고 볼수 있겠다. 게임의 뿌리를 따져가며 즐기지 않고 있으면 있는데로 편견없이 소비하는 자유 게이머다. 그런 동생에게는 플레이가 그저 다음 컷신을 위한 이동일 뿐이라도 ‘이런건 게임이 아니야’ 라는 생각은 없다. 애초에 게임이 뭐든 상관 없기 때문이다. 동생은  선택하며 진행하는 몇가지로 미리 결정된 역동적인 드라마를 즐겼고 나는 이동하는 방향키와 그저그런 선택사이에서 게임 으로서 거리감을 느꼈다. 나는 슈퍼마리오야 말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이머가 된걸까? 플레이 자체가 의미있지 않다면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꼰대가 되버린듯 하다.

내가 꼰대가 아닐까 생각 해보니 서글퍼진다. 아마도 나는 플레이 내내 진행되는 일관된 패턴의 행동에 가치를 두는 타입인것 같다. 하프라이프에서 항상 휘둘렀던 빠루라던지 엘런 웨이크의 손전등, 멕스페인의 홍콩엑션, 페이퍼 플리즈의 여권 도장찍기, 타이탄 폴의 로봇탑승, 위쳐의 쌍검 등등 게임내의 중요한 동작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의미를 확장해가는 것을 게임의 재미로 즐긴다. 이야기는 그 의미를 확장해 가는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야기와 다른이야기를 이어가는것 만이 게임이라면 플레이는 책장을 넘기는 손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겐 그것은 게임이 아니다.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의 전작이었던 <비욘드 투 소울>이라는 비슷한 게임이 있다. 당시 유명인이었던 엘런페이지가 주인공을 맏아서 이슈가 되었던 이 게임은 특이하게도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인터뷰를 진행한적이 있다 (칸 영화제였던것 같은데 확신이 없다. 찾아서 나중에 링크를 걸겠다) 당시 규모에 비해 주류라고 하기 어려웠던 게임이 영화제에 등장한것에 대해 사회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질문을 했었다.

“혹시 선택하지 않은 분기의 이야기가 가장 완성도 있는 이야기였다면 이 경험은 잘못된 것일까요?”

질문의 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의 목표는 감독이 유도한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조 안에서 주인공의 실패와 성공을 느끼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기승전결은 재밌는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기에 다중선택을 유도하는 이야기 게임에서 조차 포기할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결과는 어찌 됬느냐? 작은 선택들은 플레이어에게 주고 큰 선택들은 강제해서 유연한듯한 기승전결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 추가해 좀더 유연해 보이기 위해 맥빠지는 결론도 선택지라 추가하며 다회차를 유도하니 이것은 그저 너덜너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은 재미없는 선택을한 플레이어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렇다면 이야기와 플레이는 어느정도의 균형을 유지할때 아름다울까? 다음번에는 이야기가 좋은게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극찬 하는 <라스트 오브 어스>를 만든 너티독 스튜디오의 게임들을 주제로 이야기 해보려 한다.